SAP는 이제 ERP를 파는 것이 아니라, AI가 업무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ERP 혁신 과제를 담당하고 있는 프로세스혁신팀 심경언 입니다.
2026년 5월, 미국 올랜도에서 진행한 SAP Sapphire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SAP가 더 이상 ERP를 단순한 업무 처리 시스템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기능이 추가되었는가”, “어떤 모듈이 더 좋아졌는가”가 중심이었다면, 이제 ERP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시스템을 넘어, AI가 업무의 문맥을 이해하고 실제 실행까지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자주 들은 키워드는 단연 Context였습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어떤 업무 맥락에서 생성되었고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AI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SAP가 소개한 SAP Business AI Platform 역시 이런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AI, 데이터, 프로세스 컨텍스트, 그리고 거버넌스를 하나의 구조로 묶어 “업무를 아는 AI”를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Sapphire에서 가장 크게 보인 변화
이번 행사에서 제가 느낀 SAP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 ERP 중심 전략에서 Business AI Platform 전략으로의 이동
- 데이터 자체보다 Business Context를 더 중요하게 보는 구조 변화
- AI를 보조도구 수준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실행하는 Agent 구조로 확장하려는 방향
Autonomous Enterprise 구성요소[출처 : SAP]
이 변화는 단순히 “AI 기능이 몇 개 추가되었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SAP는 앞으로의 기업 시스템 경쟁력이 얼마나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AI가 그 기능을 실제 업무 흐름 속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듯했습니다. 기존의 ERP가 기록과 처리에 강했다면, 앞으로의 플랫폼은 이해와 실행까지 확장되는 셈입니다.
AI는 시스템을 대체하기보다, 시스템 사이를 실행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번 행사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AI가 ERP를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ERP와 업무 시스템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SAP의 Joule과 관련 플랫폼 설명을 보면, AI는 사용자의 요청을 이해하고, 어떤 시스템의 어떤 기능을 호출할지 판단하고, 필요한 흐름을 오케스트레이션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기록과 원천 처리 자체는 여전히 ERP와 업무 시스템이 맡되, 그 앞단의 경험과 연결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기업 입장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앞으로 AI 전략은 “어떤 모델을 쓸 것인가”보다 “어떤 표준과 어떤 연결 구조로 여러 시스템을 엮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SAP가 Business AI Platform, Joule Studio, Business Data Cloud, Knowledge Graph를 함께 설명한 것도 결국 이 전체 흐름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AI 하나만 잘 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프로세스·의미체계·거버넌스가 같이 설계되어야 비로소 신뢰할 수 있는 실행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개발 생산성보다 더 중요한 것: 전환 친화성
SAP Sapphire에서 확인한 또 하나의 변화는 개발 방식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는 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라고 하면 “코드를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레거시를 얼마나 잘 분석하는가, 커스텀을 얼마나 안전하게 정리할 수 있는가, 표준에 얼마나 가깝게 유도하는가가 훨씬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Clean Core(ERP Core는 표준을 유지하고, 커스텀기능은 외부로 확장해서 관리하는 전략)관점과 함께 보면, 앞으로의 개발 도구는 단순한 생성 툴이 아니라 현대화 도구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복잡한 커스텀을 분리하고, 업그레이드에 강한 구조로 바꾸고, 테스트와 운영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이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앞으로의 KPI는 “얼마나 빨리 개발했는가”만으로는 부족하고, 얼마나 upgrade-safe 한가, 얼마나 유지보수 가능한가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터를 옮기기보다 의미를 연결하라”
이번 행사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포인트는 데이터 구조에 대한 관점 변화였습니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고 복제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Zero-copy와 Semantic Layer 같은 표현이 훨씬 자주 등장했습니다.
핵심은 데이터를 많이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가진 의미와 관계를 더 잘 연결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AI와도 직접 연결됩니다. AI는 단순 수치보다, 그 수치가 어떤 업무 과정과 엔티티에 연결되는지를 이해해야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AP Business Data Cloud가 SAP와 타사 데이터를 함께 통합·관리하면서도 business data fabric과 semantic 기반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앞으로의 데이터 아키텍처는 “어디로 더 모을 것인가”보다, “어떤 의미 구조로 연결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전환의 승부처는 기술이 아니라 운영이다
이번 Sapphire를 보며 점점 더 분명해진 것은, 차세대 ERP 전환의 핵심은 기능 목록이 아니라 운영모델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전환을 성공시키는 요소는 최신 기술을 많이 도입하는 것보다,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할지, 리허설을 얼마나 촘촘히 할지, 다운타임과 예외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지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차세대 ERP 프로젝트는 “새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제”라기보다, AI 시대에 맞는 운영 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과제입니다. 인프라 선택, 데이터 구조, 개발 방식, 표준화, 승인과 통제 체계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전체를 아우르는 원칙이 결국 Clean Core, Human-in-control, 그리고 Business Context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치며
2026 SAP Sapphire는 단순히 새로운 기능을 소개하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ERP의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를 현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SAP는 ERP를 Business AI Platform으로 재정의하고 있었고, 그 변화는 개발 방식, 데이터 구조, 거버넌스, 운영모델 전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다녀오며 남은 질문은 꽤 선명합니다. 앞으로의 ERP는 단순히 안정적인 시스템이면 충분한가, 아니면 AI가 실제 업무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구조화된 플랫폼이어야 하는가. 제게 이번 Sapphire는 그 답이 이미 후자 쪽으로 많이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계속 따라가며, 기술 그 자체보다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깊이 고민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